분열된 자기 / 로널드 랭
기술적 정신병리학의 한계
증상을 기술적으로 분류하고 진단을 내리고 진단에 맞게 약을 처방하는 것이 정신과적 약물치료의 실제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환자가 경험하는 증상이 환자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보다는 빈도/심각도/정신병적 증상의 동반 여부/재발 가능성 등등에 포커스를 맞춰 두드러지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현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크레펠린적인 전통이기도 하죠.
로널드 랭에 따르면 이러한 전통에는 환자나 환자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증상이나 진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 의사의 약물치료 통제를 따라야 하는 객체화된 대상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환자로부터의 배움
환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에 대한 최고 전문가는 바로 환자 자신입니다. 치료자는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게 촉진하는 사람이며, 환자로부터 늘 배우는 자세를 견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널드 랭은 긴장증이나 와해된 언어/행동이 심한 조현병 환자를 통해 그들의 내적 경험을 이해하려한 글래스고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이를 위해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었고, 환자 가족의 이야기 또한 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치료의 핵심: 환자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로널드 랭이 반대한 것은 환자를 객체화하는 기술 정신병리학의 태도입니다. 환자의 증상에는 삶과 죽음에 관한 실존적인 차원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환자의 이야기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그가 경험하는 내면 삶을 잘 따라가는 관계 형성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심연에서 헤매고 있는 환자에게 이러한 치료자의 태도야말로 실존적 죽음으로부터 삶으로의 소생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정상/비정상 구분의 실체 없음
이러한 태도는 정신병이 사회문화적 구성 개념이며 신체적 질병(혹은 요즘 말로는 ‘뇌의 문제’)처럼 분류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지 않나 싶습니다. 랭이 이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관해서는 더 공부해 봐야 하겠으나, 최소한 정상/비정상을 어떤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정확히 분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환자 치료에 해악을 초래할 때가 더 많다고 본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분열의 정상성: 참자기를 보존하기 위한 대처로서의 자기 분열
정상에도 비정상적인 요소가 있고 비정상에도 정상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일례로, 책 내용이 어려워서 다는 이해하지 못 했으나, 로널드 랭은 조현병 환자가 참자기로부터 거짓자기를 분리시켜 위협적으로 지각된 외부 환경에 ‘대처’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거짓자기라는 게 일종의 페르소나인데 ‘정상’인 사람이 이 페르소나를 통합된 자기의 의지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는 데 반해, 조현병을 지닌 사람은 페르소나는 참자기와 구분되는 별개의 인격, 즉 거짓자기가 됨으로써 랭의 표현에 따르면 몸 속에 박힌 “유산탄 파편”처럼 참자기를 병들게 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달시켜 나갑니다. 하지만 정확히 알기 어려운 어떤 이유들로 인해 다른 사람을 비롯한 외부 환경을 너무나 공포스러운 대상으로 지각하게 될 때, 자기를 이처럼 분열시킴으로써 일종의 대리적인 사회적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참자기는 거짓자기의 주시라는 가상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일시적으로 안정감을 획득할 수 있으나, 이러한 안정은 오래 지속되기가 어렵고 또 다시 박해의 위협이나 참자기가 소멸해 간다고 느끼는 데 따른 공포를 경험하기 쉽습니다.
자기의 분열은 일종의 대처 양식입니다. 우리 모두가 페르소나를 통해 자기를 분열시키지만 이러한 분열이 통합된 자기의 일부 과정으로서 진행되느냐 아니면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 별개의 인격으로 발전하느냐에 따라 정신병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분열된 자기이기 전에 한 인간
분열된 자기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차과정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분열된 자기의 언어는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일차과정 사고를 기반으로 합니다. 일차과정 사고가 언어나 행동으로 표현될 때 기술적으로 와해된 언어/와해된 행동이라 지칭합니다. 랭이 대단한 것은 이 와해된 언어 및 행동을 이차과정 사고로 이해할 수 있게 해독해 내는 치료 작업에 천착한 것 아닐까 합니다. 칼 융은 ‘치료자가 견뎌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조현병 환자가 조현병 환자이기를 멈춘다’고 말했다 합니다. 랭은 환자와의 관계 안에서 그가 경험하는 혼돈과 공포를 함께 견디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하며 ‘조현병 환자’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사회 안에 존재할 수 있게 애썼다는 데 배울 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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