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 / 조던 피터슨
이 사람이 임상심리학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너무 구태의연합니다. 혼돈의 해독제라는 부제는 더 그렇고요. 하지만 이 책 읽고 시원시원한 필체에 반해버렸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근거도 명확하네요. 설득력이 있습니다.
조던 피터슨의 이 책만 놓고 보면 제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은 좌파가 아닌 게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같은 극우주의자들을 대변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어떤 이데올로기든 간에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만, 그렇다고 포스트모더니스트도 아닙니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선한 어떤 것에 대한 플라톤적인 믿음이 있는 것 같고요.
뭐가 됐든 간에 저는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논점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주로 성경을 인용하며 혼돈과 질서라는 프레임을 통해 어떻게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질서 잡힌 삶을 살 수 있는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설명 방식이 이 책의 제목만큼 구태의연하지 않습니다. 신화나 정치를 비롯한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자기 삶의 경험을 더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야기꾼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 책이 그리 녹록한 책은 아닙니다. 저는 이 사람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버거울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고도의 추상화로 인해 뇌에 부담이 올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논지에 공감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데리다를 위시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서구 근대 문명을 불평등/지배/착취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며 모든 것을 해체하려 드는 것을 꽤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챕터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 왜 애초에 세상은 불평등한지에 관한 것입니다. 애초에 완벽한 평등이란 있을 수가 없고, 그런 사회를 구현하려 했던 중국이나 소련, 캄보디아의 실상이 어땠는지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조던 피터슨이 생각하는 것처럼 맑시즘의 연장선상에서 결과의 평등을 주장한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수혜를 받은 오늘날의 좌파(페미니스트 포함)들이 주장하는 것은 출발선에서의 평등이지 결과의 평등이 아닙니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말하는 사회적인 불평등은 출발선에서의 불평등을 지칭하는 것이며, 세상은 원래 불평등한 것이야 라는 말이 출발선에서의 불평등을 합리화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던 피터슨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결과는 원래 불평등한 것이야 라는 주장은 극우주의자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기 쉬운 어떤 것 아닐까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는 조던 피터슨이나 그가 사상적으로 영향 받은 니체가 주장하듯이 더 많이 가진 자들을 시기하는 가운데 결과의 평등을 외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기회와 수혜마저 박탈당하는 이들에 대한 공감을 통해 출발선에서의 평등을 외치며 빈부 격차를 줄여보려는 다양한 시도들로 이어질 수 있는 데는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기여가 분명 있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성별 차이에 관해서도 꽤나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직업적 역할이 사회문화적인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기보다 애초에 생물학적인 것이다 라는 주장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는 열심히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질서에 합치하는 것이라는 논지로 전개되는 것은 심한 비약으로 여겨지고요. 돈을 많이 벌던 여성들도 아이를 낳게 되면 돈을 써서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직접 키우는 가운데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시야가 협소하고 아이를 둘이나 키운 사람의 발언으로는 여겨지지가 않습니다(418-19쪽). 돈이 있어도 아이를 맡기지 않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그런 경향성이 강하다기보다 제 자식을 남편이 함께 키우지 못 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유아를 함부로 맡기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닌가요. 조던 피터슨은 이러한 선택을 순전히 여성들의 문제로 돌린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은 고통 가운데서도 하루하루 정진하면서 각자가 가치롭다고 여기는 무엇을 위해 분투하는 삶이 결국 좋은 삶이라는 주장을 꽤 설득력 있게 펼칩니다. 책의 말미에 피터슨과 그의 가족이 피터슨 딸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경험했을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조던 피터슨은 아마도 이 고통의 여정에서 자기가 했던 선택과 행동들을 기억하며 이 책을 썼을 것입니다. 주장과 행동이 일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저는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힘들어하는 혹은 삶의 기로에서 갈팡질팡 혼란스러워 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이 큰 위로와 한걸음 나아가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 전통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 그렇고요. 다만, 조던 피터슨의 논지에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걸러 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심리학, 신학, 철학, 정치학 등을 아우르는 '자기계발서'로 접근하시면 좋겠습니다.
Comments